두오모 성당에 뒤늦게 방문한 정명석
정명석의 주장
JMS측은 1999년 정명석이 해외 선교를 하러 나갔다며 관련된 여러 행적을 소개한다. 언론의 비난적 보도와는 다르게 은밀하게 ‘시대의 뜻’을 이루고 다녔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로 두오모 성당에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해 위해 기도한 일화를 든다.
정명석은 1999년 10월 31일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에 방문했다고 한다. 그곳의 신부를 통해 천주교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개신교와 천주교의 구원이 같다는 결론을 냈으며, 그 자리에서 두 교파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고 주장한다. 마침 같은 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천주교와 루터파 교회가 약 500년 만에 역사적인 합의에 도달했고, 양측 대표가 구원에 대한 오랜 논쟁을 마무리하는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그는 자신이 먼저 오해를 풀고 기도했기 때문에 상징적 사건이 현실에서도 일어났다고 말한다.
1999년 10월 31일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는 심령이 크게 성령에 감동되어 계획도 없이 이태리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 가고 싶어졌다. 즉시 일어나 열차를 타고 30분이나 떨어진 두오모 성당으로 갔다.
— 구원의 말씀 1권, 정명석, p.318
두오모 성당에 갔다 온 지 3일 후에 신문을 보니 종교개혁 이후 최초로 구교와 신교가 나뉘었던 독일의 아우구스부룩에서 천주교 측과 루터교 측 대표들이 서로 감정을 화해하고 구교와 신교의 구원이 같다고 서로 합의하고 482년 동안 격했던 감정과 싸움을 마치고, 내가 두오모 성당에 갔던 날 10월 31일에 서로 화해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나는 가슴이 찡하여 다시 고개 숙여 하나님과 예수님께 기도했다.
이로 인해서 나도 같은 날 하늘의 뜻에 따라 두오모 성당에 가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 나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푼다’는 성경의 말씀이 가슴에 뜨겁게 와 닿았다.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보낸 사명자가 풀어야 그 따르는 자들도 푸는 것이다.
— 같은 책, pp. 335-336
모 설교에 따르면, 정명석은 천주교 신부에게 마리아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지 등을 묻고, 결국 개신교나 천주교나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설교 중간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해도 되지만 굳이 안 해도 된다’, ‘예수님께 바로 기도하면 되지,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나갈 필요는 없다’와 같은 주장을 덧붙였다.
구체적 일정
정말로 정명석이 천주교에 대한 오해를 풀어, 두 종교 집단이 화해한 것일까? 인과관계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정명석의 방문 일정과 서명식 일정을 비교해 보면 된다. 그는 정말로 그날 그 장소를 방문했을까? 이는 동생 정Y석이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이 있어 방문사실을 거짓이라 보기 어렵다. 다만 신부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는 물리적인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주일 예배 후 성당을 찾았다고 했다. JMS의 예배는 오전 9시에서 10시 정도에 보통 시작하고, 일반 교회에 비해 설교 시간이 길다. 그리고 기차로 30분 거리라고 했으니, 실제 방문까지는 1시간 이상이 소요됐을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높은 확률로 오후에 두오모 성당에 도착했을 것이다.
이제 공동서명식이 이루어진 정확한 시각만 확인해 보면 된다. 서명식이 오후나 저녁에 있었다면 정명석의 주장이 일관되었다 볼 수 있고, 이른 시각이었다면 그의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서명식의 구체적인 시각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사에서는 1999년 10월 31일이라는 날짜만 언급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종교인들은 보통 아침에 움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스쳐, 검색어에 morning을 추가해 찾아 보았다.
그 결과, 서명 행사의 아주 구체적인 시간표를 담은 책을 찾게 됐다. 천주교 측 대표단으로 참여한 John A. Radano의 저서로, 공동선언문 서명 당사자의 추천사가 담겨있었다.

책의 목차, John A. Radano
목차를 보면 행사는 29일부터 31일까지 삼일간 진행됐다. 29일에는 기자회견, 30일에는 시청에서의 기념식이 있었고, 31일 아침에는 서명식이 거행되었다. 서명식 당일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예배에서는 종교 갈등에 대한 회개와 화해에 대한 감사가 강조되었고(John A. Radano, p.178), 교황 존 폴 2세는 같은 날 정오 이전 베드로 광장에서 ‘사인(sign)’을 선언했다(John A. Radano, p.180).
결국, 정명석은 서명식이 끝난 이후에 두오모 성당에 도착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방문의 개연성
그는 성령의 감화로 자신도 모르게 두오모 성당을 찾은 듯 이야기 한다. 그러나 두오모 성당은 종교개혁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장소로 보기 어렵다. 그보다 그곳은 세계적인 관광지이기 때문에 주말에 이탈리아를 방문한 신앙인(혹은 신앙인인 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택할 법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도 10월 31일에 천주교 성당을 방문했다는 점이 의미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0월 31일은 무작위로 고른 날짜가 아니라 1517년 10월 31일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날이다. 따라서 그는 예배 이후 ‘오늘이 종교개혁일’이라는 정보를 듣고 움직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정명석은 이 사건(공동선언문 서명)을 3일 뒤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기록했다. JMS에서는 이를 두고 “하나님이 사명자에게 뉴스를 보여 주셨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3일 뒤 기적임을 깨달은 패턴이 유독 자주 발견 된다면, 사후적으로 끼워 맞춘 이야기는 아닌지 의심이 필요하다. 그가 천주교 신부와의 대화를 통해 마리아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고 말한 대목 역시, 수년이 지난 뒤의 설교에서 나온 말이므로 뒤늦게 보고서를 접한 뒤 만들어진 서술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사는 절대 즉흥적으로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행사 일정을 몇 주 전에 미리 보도하고 있다.
Officials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most of the world’s Lutheran churches plan to sign an agreement next week that ends a 450-year theological dispute that helped spark the Protestant Reformation.
Lutheran-Catholic Pact Is Criticized, October 23, 1999
Anderson said there is joy in noting that this century will end with a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for Lutherans and Roman Catholics. A formal signing of the Joint Declaration will take place Oct. 31 in Augsburg, Germany.
ELCA Assembly Hears Bishop Address Legacies for the next Millennium, October 17, 1999
공동선언문의 핵심내용
그렇다면 정명석이 풀었다는 오해와 공동선언문의 내용은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공동선언문의 핵심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는가에 대한 기본 진리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점에 합의했다. 반면 정명석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라고 요약했다. 은혜라는 단어가 빠져 있는데, 이는 정명석의 구원론이 정통 기독과와 다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선언문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명석은 성모 마리아 문제를 주로으로 거론한다. 그러나 공동선언문에는 성모 마리아가 언급되지 않는다. 수 십년에 걸친 대화에도 불구하고, 성모 마리아, 성인(saint), 바티칸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정명석은 두 집단의 입장을 자신이 조율하듯 주장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해도 되지만 굳이 안 해도 된다’라는 주장은 정교하지 못한 발언으로 어느 한 쪽의 지지를 받기도 어려운 주장이다. 논점은 마리아 신앙이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의미를 희석시키는지에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마리아에게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발언에는 숨겨진 의도가 따로 숨어 있었다. 정명석은 자신이 새로운 사명자임을 자처해 왔다. 이에 따라, 이제는 자신이 중보자 역할을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정명석 이전에는 마리아의 중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겠지만, 이제는 마리아의 이름을 언급할 시간에 정명석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라는 말이다.
JMS에서는 천주교 보다 개신교의 차원이 높고, JMS는 개신교의 계보를 이어받아 차원을 높인 종교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정명석은 자신이 개신교 입장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리아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그의 주장은 더 이상 개신교의 입장이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정명석은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야 했을까? 종교개혁과 관련 없는 두오모 성당에 방문해 천주교 신부와 대화를 나누는 대신, 종교개혁과 직접 관련된 스위스나 독일에 위치한 교회를 방문해 목사를 설득하고 자신의 제자로 만들어야 했다.
요약
정리하면, 서명식은 사전에 계획되어 29일부터 31일까지 삼 일간 여러 행사와 함께 진행되었고, 서명식은 31일 아침에 있었으며, 정명석은 그 이후 오후에야 두오모 성당에 도착했다. 또한 그는 합의문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 John A. Radano, Lutheran and Catholic Reconciliation on Justification, Eerdmans (July 28,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