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 정명석은 언제 어느 나라를 방문했는가
교인들의 믿음
1999년부터 시작된 정명석의 해외 생활에 대해 JMS교단은 해외선교를 나간 것이라 해명했다. 해외도피라는 언론보도와 달리 이는 성경이 예견한 환란으로 사명자인 정명석은 은밀하게 뜻을 이루어 나간다고 했다. JMS 회원(교인)들은 그 말을 믿으며 ‘섭리 역사’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정명석이 해외에 있는 동안에도 언론보도는 끊이지 않았다. 그가 새로운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성추문이 뒤따랐다. 하지만 JMS내부의 상황은 반대였다. 정명석이 방문하는 나라와 장소마다 미담과 사연이 만들어졌고, 설교와 모임을 통해 교인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JMS는 99년부터 이어진 성추문을 직접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정명석에 대한 미담과 신화를 만들어 ‘그럴 사람이 절대 아니다’라는 프레임을 굳혀 나갔다.
선생이 지난 10년 동안 해외에 있을 때 주님과 함께 행했던 일들은 그 장소에서 본 제자들에게 모두 기록하라고 하여 그들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본 것을 잘 기록해서 보내 주면 선생이 책으로 엮으려 합니다. 또 선생이 더 깨우쳐 주고 기도하여 증거하게 해 줄 것입니다. 저마다 국내에서, 해외에서 본 것들을 기록하여 보내 주기 바랍니다. 선생은 그동안 겪은 것이 너무 많아서 잊어버린 것도 많으니 본 자들이 본 것을 기록하여 보내 주기 바랍니다. 보고 들은 것을 써서 보낼 때는 핵심을 잘 기록해서 보내야 합니다.
평화의 왕 주사랑 크리스마스, 2011년 12월 25일
JMS의 설교에서는 해외에서 겪은 일들이 책으로 엮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사연은 10년이 넘도록 책으로 엮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해외 방문 기록
정명석은 실제로 수많은 국가를 방문했다. 관련된 사연을 나라별로 정리하면, 수 시간에 걸친 이야깃거리가 나오기 때문에 분량이 없어서 책으로 엮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연을 날짜순으로 정리했을 때 발생한다. 정명석의 유럽 방문을 JMS의 역사론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연대순으로 정리 될 필요가 있는데, 문제는 정명석의 유럽 방문 기간이 매우 짧아, 주요 사연이 매우 짧은 시점에 몰려 있다는 점에 있다.
- 1999년 1월: 홍콩
- 1999년 2월: 독일, 안나 교회 방문
- 1999년 5월: 일본(지바) 순회, 싱가폴 순회, 홍콩 전도행사
- 1999년 6월: 한국 입국 (23일 하루 조사 받음), 규슈 방문
- 1999년 7월: 홍콩 (그것이 알고싶다 정명석 인터뷰), 미국 샌디에고
- 1999년 8월: 프랑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GACP 1회 행사)
- 1999년 10일: 이탈리아 밀라노
- 2000년 2월: 이탈리아
- 2000년 3월: 한국 입국 조사 받음
- 2000년 4월: 독일 슈투트카르트 GACP 3회 행사
- 2000년 9월: 영국 켐브리지, GACP 행사
- 2000년 11월: 스리랑카, 명예 대체의학 학위
- 2000년 12월: 말레이시아
- 2001년 1월: 훗카이도, 동경, 지바, 효고, 후쿠오카
- 2001년 2월: 한국에서 조사 받음, 25일 가슴찡
- 2001년 3월-4월: 대만 방문, 천수이벤, GACP, 대만 지도자 모임
- 2001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 2001년 8월 초: 하와이 세계평화교류대회(WPE)
- 2001년 8월 중순: 오사카, 지바
- 2001년 8월 말: 말레이시아 (성폭행 사건)
- 2001년 9월: 포딕슨 해변
- 2001년 12월 말: 오사카, 효고, 교토, 야마나시
- 2002년 1월 초: 야마나시
- 2002년 6월 말: 지바, 카나가와, 월드컵 결승전 및 폐막식 참석
- 2002년 7월 말: 지바
- 2002년 9월: 홍콩에서 정명석 여권 몰수
- 2003년 2월: 홍콩 사건
- 2003년 4월: 홍콩 계곡 청소
- 2003년 7월: 모기장 사건, 체포 후 벌금 내고 보석으로 석방
- 2003년 7월 이후: 여권 없이 중국으로 감.
- 2006년 4월: 중국 태권도부 사건
- 2006년 7월: 몽골, 명가수
- 2007년 4월: 북경 이동
- 2007년 5월: 정명석 중국 공안에 체포
(자료의 한계로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시점은 정리하지 못했다.)
연대를 살펴보면 정명석은 대부분 일본, 대만, 홍콩에 머물렀다. 반면 유럽에 방문했던 기간은 1999년에서 2000년까지로 길게 잡아야 2년 정도 이다. 이 기간 중에도 중간 중간 아시아 국가를 자주 방문하여 실질적인 유럽 체류 기간은 1년 반 미만으로 추정된다.
유럽선교와 역사론
짧은 유럽선교 기간은 왜 문제가 될까? JMS의 역사론에 따르면, 1999년 이후는 무덤기간이고, 이 시기에는 영적인 무덤인 유럽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시기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유럽은 원래의 신앙이 죽었기 때문에 영적인 무덤 같은 지역이라고 봤다.)
무덤기간의 최소기간은 3년 6개월이다. 이는 정명석의 실제 체류기간에 비해 매우 길기 때문에 교리에 모순된다. 10년 가까운 해외 생활과 비교하면 괴리는 더욱 커진다.
JMS의 수많은 집회와 설교에서는 사연이 있었던 정확한 일자를 알리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이나 두오모 성당 방문 이야기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문한 지역만 언급되는 사연을 많이 접하게 된다면 잘못된 인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1999년부터 2005년 정도까지 유럽에 머물면서 가끔 아시아, 호주, 미국에 방문 하고, 2006년 즈음에는 방향이 바뀌어서 중국으로 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실제와 매우 다른 추측이다. 유럽 선교 기간은 길어야 1년 반 정도이고, 주목할 만한 전도 실적도 없었다. 영적인 무덤인 유럽에 사명자가 방문했다면, 유럽 지역 전체에 기독교 신앙의 붐이 다시 일어나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런 징조 또한 없었다.
여권 없는 해외선교
JMS는 정명석이 해외선교를 위해 출국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JMS의 역사론은 유럽선교의 의미를 강조하며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정명석의 실제 해외 방문 일정을 살펴 보면, 그가 실제로 유럽에 머무른 기간은 1년 반 정도였다. 1년 반 정도의 기간은 JMS에서 말하는 여러 종류의 무덤기간과 비교해 매우 짧은 기간이다. 이는 JMS 교리의 치명적인 모순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정명석이 해외선교를 하러 나갔다는 JMS의 종교적 주장에는 여러 균열이 발견된다. 반면 정명석이 해외도피를 했다는 언론의 주장은 여러 뚜렷한 상황에 근거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2002년 9월 정명석의 여권 몰수 사건이 있다. 그는 홍콩 당국에 여권을 몰수 당해 이후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다. 2003년 7월 이후 한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중국으로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여권없는 출입국이 있었으므로 브로커를 통한 밀항이 있을 것이라는 언론의 추측이 있었다.